1.지조 높은 개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었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윤동주, 「또 다른 고향」 윤동주는 식민지 시대 시인이다. 「서시」라는 시에 나타난 대로, 그 시대에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길 원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 때문에 괴로워할 정도로 순수했던 청년 윤동주는 십자가를 지는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굳은 의지(「십자가」)를 지닌 청년이기도 했다. 「또 다른 고향」에서 윤동주가 갈망하는 곳은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이다.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또 다른 고향’은 “백골 몰래” 가야하는 이상향과 같은 장소이다. 왜 그는 백골 몰래 그곳에 가야 하는 것일까? 시인은 이 시의 1연에서 고향에 돌아온 날 밤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고향에 돌아온 건 ‘나’만이 아니다.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라는 시구에 암시된바 그대로 나는 이미 백골과 하나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내가 고향에 돌아왔으니 백골도 당연히 고향에 돌아왔다. 나, 곧 이 시의 화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갈등에 빠진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오는데, 백골은 화자 곁에 꼭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긴 떨어질 수가 없다. 이미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주로 통하는 어둔 방에서 백골을 보며 끊임없이 한숨을 내쉬는 시인=화자의 모습은 그래서 그만큼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화자는 묻는다.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라고. 화자=나의 이면에는 백골이 있고, 아름다운 혼이 있다. 내가 울면 백골도 울고 아름다운 혼도 운다. 이들은 셋이면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몸=마음속에 세 개의 영혼이 들어 있으니 지독한 자아분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윤동주 시를 관류하는 자아 분열의 양상은 사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자아를 찾기 위한 성찰의 도정에서 펼쳐진다. “아름다운 혼”의 입장에서 본다면 고향에 돌아온 ‘나’나 백골은 결코 순수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문제는 시인이 마냥 “아름다운 혼”의 입장에서만 ‘나’라는 자아를, ‘백골’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바라보기는 힘들다는 점에 있다. 아름다운 혼이 있으려면 현실의 ‘나’가 있어야 하고, ‘나’에 들러붙은 백골 또한 있어야 한다. 이들은 삼각형의 꼭짓점 하나씩을 차지한 채 삼각형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다. 아름다운 혼을 지향하는 화자가 그 혼이 있는 세계로 쉽게 갈 수 없는 까닭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윤동주는 “지조 높은 개”라는 대상을 외부에서 길어 올린다.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 지조 높은 개는 시인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혼”을 선택할 것을 강권한다. 물론 시인의 마음은 이미 아름다운 혼이 있는 세계로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세계로 가는 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현실의 ‘나’가 있고, 백골이 여전히 자기 존재를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현실의 ‘나’와 백골을 내치지 않는 한, 시인은 아름다운 혼이 있는 세계=또 다른 고향으로 갈 수 없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라는 시인의 선언은 바로 이 지점에서 터져 나오거니와, 시인은 나-백골과 단절되는 고통을 감내함으로써 또 다른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열어 젖힌다. 윤동주의 시에 나타나는 자아 성찰은 이렇게 어둠을 짖는 지조 높은 개를 따라 “쫓기우는 사람처럼” 또 다른 고향으로 나아가는 존재와 더불어 이루어지고 있다. 지조 높은 개는 그러한 자아 성찰의 과정이 얼마나 힘든 여정인가를 에둘러 보여주고 있다. 지조 높은 개는 자아의 입장에서 보면 타자이다. 자아의 외부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동시에 타자라는 외부는 자아가 지향한 세계의 모습을 온전히 품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지조 높은 개에게 쫓기면서도 시인은 지조 높은 개가 지닌 순수한 마음에 한없이 끌리고 있다. “지조 높은 개”는 그러므로 윤동주 시인이 지향했던 내면적 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은 지조 높은 개에게 쫓기듯 또 다른 고향으로 가는 화자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 그는 지조 높은 개가 이끄는 바로 그 길을 망설임 없이 따라가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백골 몰래” 가야 하는 그 길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걸 정도로 험난한 길이었을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이라는 게 결국은 우리가 사는 이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삶이 아니던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순수한 청년 윤동주는 이렇게 지조 높은 개가 울부짖는 소리를 따라 아름다운 혼이 기다리는 또 다른 고향을 향해 기꺼이 길을 떠난다. 요컨대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은 순수한 삶을 향한 한 청년의 열정만으로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울리고도 남을 만한 여운을 주고 있는 것이다. 2. 풀 한 포기 없는 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도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길」 시인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잃어버린 건 확실한데,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를 때의 안타까움은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시인은 지금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다. 두 손으로 주머니를 자꾸 더듬는다. 무언가가 주머니에 있을 리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시인을 길을 나선다. 집안에는 없으니 집밖으로 나가는 것일까?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이어진 돌담을 끼고 그는 계속 걷는다. 돌담에는 쇠문이 있고, 그것은 굳게 닫혀 있다. 돌담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으니 시인은 그 주변을 서성이기만 한다. 저 돌담 너머에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시인은 생각하는 것일까 길 위에 돌담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무언가를 찾지 못했는데, 시간은 어느새 저물녘이 되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시인은 머뭇거린다. 집으로 돌아가도 할 일이 없다. 마음속으로는 잃어버린 것을 생각할 테니 잠도 쉬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돌담 주변을 걷는 것도 의미가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라는 시구에 나타나는 대로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새벽을 노래한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 조명하는 그의 삶과 시 세계
올해는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기념비적인 해이다. 이 책은 이를 기념하여 출간한 윤동주 특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윤동주 전집 은 윤동주가 발표한 시 97편과 산문 4편을 빠짐없이 담고 있으며, 해설 자료를 덧붙여 윤동주 시의 올바른 이해와 감상을 돕고 있다. 그의 문학작품들은 모두 꼼꼼한 검수과정을 거쳐 온전한 형태로 게재하였으므로, 혹여 잘못 알려지고 있는 정보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보다 깊은 이해를 원하는 독자를 위해서는 국내외의 저명한 저자들의 연구논문이 준비되어 있다. 이는 모두 윤동주와 그의 시 세계를 살피는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가려 뽑은 것이다. 부록으로 다루고 있는 윤동주에 내려진 판결문 전문과, 그 입수 경위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윤동주와 관련한 단행본 및 논문 목록을 게재하여 연구를 필요로 하는 독자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윤동주의 가계도와 연보, 작품 연보 또한 잘 정리되어 있다.
이번 윤동주 전집 이 독자들에게 그동안 알고 있던 사실에 더하여 시인 윤동주의 삶과 시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책머리에
윤동주 전집을 다시 엮으며 / 권영민
제1부 시·산문·해설 자료
시 - 윤동주가 남긴 시 작품의 전부(97편)
서시序詩 / 초 한 대 / 삶과 죽음 / 거리에서 / 창공蒼空 / 남南쪽 하늘 / 조개 껍질 / 병아리 / 오줌싸개 지도 / 기왓장 내외 / 비둘기 / 황혼 / 가슴 1 / 산상山上 / 이런 날 / 양지陽地쪽 / 산림山林 / 닭 / 가슴 2 / 꿈은 깨어지고 / 빨래 / 빗자루 / 햇비 / 굴뚝 / 무얼 먹고 사나 / 봄 / 참새 / 편지 / 버선본 / 눈 / 아침 / 겨울 / 황혼黃昏이 바다가 되어 / 거짓부리 / 둘 다 / 반딧불 / 밤 / 장 / 달밤 / 풍경風景 / 한란계寒暖計 / 소낙비 / 명상瞑想 / 바다 / 산협山俠의 오후午後 / 비로봉毘盧峯 / 창窓 / 유언遺言 / 새로운 길 / 비 오는 밤 / 사랑의 전당殿堂 / 이적異蹟 /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 슬픈 족속族屬 / 고추밭 / 햇빛·바람 / 해바라기 얼굴 / 애기의 새벽 / 귀뚜라미와 나와 / 산울림 / 달같이 / 투르게네프의 언덕 / 산골 물 / 자화상自畵像 / 소년少年 / 팔복八福 / 위로慰勞 / 병원病院 / 무서운 시간時間 / 눈오는 지도地圖 / 태초太初의 아침 / 또 태초太初의 아침 / 새벽이 올 때까지 / 십자가十字架 / 눈감고 간다 / 못 자는 밤 / 돌아와 보는 밤 / 간판看板 없는 거리 / 바람이 불어 / 또 다른 고향故鄕 / 길 / 별 헤는 밤 / 간肝 / 참회록懺悔錄 / 흰 그림자 / 흐르는 거리 / 사랑스런 추억追憶 / 쉽게 씌어진 시詩 / 봄 / 유고를 공개하면서 / 윤일주 / 밤에 뿌린 씨앗들 / 김우규 / 곡간谷間 / 비애悲哀 / 장미薔薇 병들어 / 내일은 없다 / 비행기 / 호주머니 / 개 / 고향 집
산문 - 윤동주가 남긴 산문의 전부 4편
화원花園에 꽃이 핀다 / 종시終始 / 별똥 떨어진 데 / 달을 쏘다
해설 자료 - 윤동주 시의 깊고 바른 이해와 감상을 위하여
슬프도록 아름다운 시들 / 정지용
내가 아는 시인 윤동주 형 / 문익환
윤동주의 시 이렇게 읽는다 / 이승훈
일제 암흑기의 찬란한 빛 / 문학사상 자료연구실
제2부 연구 논문
김남조 / 윤동주 연구
김용직 / 어두운 시대의 시인과 십자가
김윤식 / 어둠 속에 익은 사상
김현자 / 대립의 초극과 화해의 시학
김흥규 / 윤동주론
오세영 / 윤동주의 시는 저항시인가·
이어령 / 어둠에서 생겨나는 빛의 공간
오무라 마쓰오 / 나는 왜 윤동주의 고향을 찾았는가 / 윤동주의 사적 조사 보고
/ 윤동주 시의 원형은 어떤 것인가
제3부 부록
윤동주에 내려진 판결문 전문
판결문 입수 경위와 해설 / 새삼 이는 울분을 가누며 / 윤일주
순절의 시인 윤동주에 대한 일본 특별 고등 경찰 엄비 기록
새 자료 발굴의 경위 / 가슴에는 고초의 흔적 / 윤일주
새 자료에 대한 평가 / 동주의 독립 운동의 구체적 증거 / 정병욱
윤동주 관련 단행본 및 논문 목록
윤동주 가계
윤동주 연보
작품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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